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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5

Views : 1,542 2015-10-23 14:53
자유게시판 127091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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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정(大反政)

 연재소문이 언제 테어났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앞에서 본 『갓쉰둥이전』처럼 집을 떠나 살다가 돌아와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은 듯하다.
『신당서』는 연개소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개소문은 용모가 매우 걸출하고 준수하였으며 특히 수염이 아름다웠다.
관과 의복을 모두 금으로 장식하고 다섯 자루의 칼을 차고 다녀서 주위 사람들이 감히 그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가 말에 오를때는 귀인을 땅에 엎드리게 하여 그를 딛고 을랐으며, 언제나 의장대를 앞세우고 인도자가 큰 소리로 행인들을 피하도록 하였다. 이에 모두 두려워서 구덩이나 골짜기로 뛰어들었다.

위의 묘사는 중국인들이 연개소문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미워했는지 잘 보여 준다.

『신. 구당서』는 공히 연개소문을 천성이 포악잔인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는데, 『삼국사기』역시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상고사는 거의 중국인에 의해 저술된 셈이니, 부끄롭고 통탄할 노릇이다.  갖쉰둥이가 연개소문이 분명하다면 위의 악의적인 묘사는 적대감정에서 나온 허위임에 분명하다.

15년 만에 어여쁜 색시 영희를 대동하고 귀환한 연개소문의 이야기는 당시 고구려에 두루 퍼져 시대를 풍미하는 연애담이 되었다.
연개소문은 부친의 직위를 물려받기 전부터 고구려인들의 마음에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개인적인 고난과 웅대한 포부와 극적인 연애담은 충분히 그를 영웅으로 만들 법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고구려인들이 연개소문을 두려워한 게 아니라, 실은 그렇게 기록한 중국인들이 두려워했던 인물이라는 추청이 가능하다.

연개소문이 귀환하여 장자의 권리를 되찾았을 무렵. 수나라는 막다른 고개에 이르렀다.

대토목 공사와 대규모 원정의 잇따른 패배로 백성의 원성을 산 수왕조는 결국 황제가 신하에게 암살당하며 막을 내렸다.

중원은 곧 군웅이 할거하는 혼란에 휩싸였다.
이때를 틈타 이세민은 아버지를 옹위하여 반란을 일으켜 군웅을 제압하고 중원을 평정하였다.
그리고 형과 아우를 제거하고는 스스로 제위에 올라 연호를 정관(貞觀)이라 하고 나름의 치세를 펼쳐가기 시작했다.
 당태종의 야심은 동국까지 토평하는 데 있었으므로 즉위하면서부터 그 준비를 했다.
일생의 적수인 연개소문을 굴복시키고자 꾸준히 첩자를 보내 고구려를 염탐하고, 선정을 베풀어 인망을 얻는 한편, 병력을 정예화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하며 적기(適期)를 노리고 있었다.  

낭만적인 연애담의 주인공 연개소문이 다시 한번 천하에 그 이름을 진동시킨 해는 서기 642년경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연개소문은 아버지의 직책을 물려받아 대대로가 되었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다.
 고구려의 재상급인 대대로는 중앙을 포함한 4부(四部)가 공히 인정해야 세습할 수가 있었는데, 원만하게 타결되지 않으면 부족간 전쟁이 터지기도 하였다. 이때 왕은 관여하지 않고 그 결과를 보고는 인준해 주는 정도로 무마되곤 하였다고 『당서』는 전한다.

 그런데 연개소문의 대대로 세습은 다른 부족과 영류왕의 반감을샀다.
연개소문이 공공연히 중원을 평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탓이었다.
그가 대대로가 되면 대규모의 전쟁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비록 사상 최대의 전쟁인 대수전(針陋란)을 승리로 장식한 고구려였지만 다시 당나라와 치를 전쟁에는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에 연개소문은 최대한 머리를 숙여 직위를 세습받는 데 성공했다.
그가 “잘못하면 그때 죄를 물어 자리에서 물리라"며 사정하자 영류왕과 4부의 호족 중신들은 하는 수 없이 연개소문을 대대로로 인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드디어는 걱정했던 대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그 문제가 어떤 것인지 『삼국사기』에는 상세하지 않으나, 신재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다음 일화가 그 발단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당시 기개 있는 고구려 장정들은 누구나 중원 토평의 꿈을 가졌던 듯하다.
누대로 중원의 침략을 받으며 동으로 밀렸는데, 사상최대의 정벌전이었던 대수전에서 거듭 승리하자 자신감이 넘쳤다.
남쪽으로는 신라, 백제와 경계선을 지키고 서북진하여 중원을 토평하는 것은 살수 대첩의 영웅 을지문덕의 강력한 주장이었다.
연개소문은 을지문덕의 유지를 이은 인물이 되었고, 그를 따르고자하는 사람이 전국에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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