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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4

Views : 1,221 2015-10-23 14:52
자유게시판 1270919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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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는 또 하나의 소설을 들어 연개소문의 실체 추적에 나선다. 중국의 소설가 장열(張悅)이 쓴 『규염객전(?髥客傳)』이 그것인데,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규염객은 부여 사람으로서 중국 태원에 이르러 이정(李靖)과 친교를 맺고 그의 아내와는 의남매를 맺었다.
그리고 중국의 제왕이 되려다가 당태종의 영기(靈氣)에 눌려 단념하고는 귀국하여 부여국에서 난을 일으켜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정은 『이위공병법』을 남긴 병법의 기재(奇才)로 이세민이 수나라를 멸하고 중원을 평정하는 데 가장 공이 켰던 실존 인물이다. 재상 위징이 이세민의 왼팔이라면 장군 이정은 오른팔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병권을 장악한 총사령관 이정은 당태종이 고구려 침공에 나설 당시 반대하며 참전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신채호는 『해상잡록』에서 발췌하여 실었는데 다음과 같다.
당태종(이세민)이 고구려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고는 당에서 첫째가는 명장인 이정에게 총사령관을 맡겼다.
그러자 이정은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임금의 은혜도 무겁거니와 스승의 은혜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일찍이 태원에 있을 때 개소문을 만나 병법을 배웠습니다.
그 뒤 폐하를 도와 천하를 평정한 것이 다 그 병법에 힘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어찌 스승으로 섬기던 개소문을 치겠습니까7"
 그러자 태종이 물었다.
 "개소문의 병법이 옛사람 가운데 누구와 비길 법하오?"
 이정이 대답했다.
 "첫사람은 알 수 없고, 오늘날 폐하의 장수 가운데는 적수가 없습니다.

비록 천자의 위엄으로 가시더라도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태종이 못마땅히 여겨 물었다.
 "넓은 땅과 많은 백성과 강한 군사가 있는데 어찌 개소문 한 사람을 두려워한단 말이오?"    이에 이정이 다시 대답했다
 "개소문이 비록 한 사람이지만, 그의 재주와 지혜는 만 사람보다 뛰어납니다 그러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이정은 스승 연개소문을 칠 수 없다며 태종의 동정(東征)을 말렸다.
하지만 이세민은 듣지 않고 이정에게 후방을 맡기고 기어이 동정에 나설 작정을 하였다.  이상 살펴본 세 책을 종합하여 보건대 그 주인공은 연개소문이 틀림없다고 판단된다.

중국인이 묘사한 바로도 연개소문의 실력은 성탕과 무왕에 비견되는 영명한 군주인 당태종에 필적할 만하였으니, 실상은 이세민을 능가한다는 걸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사적에는 연개소문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삼국사기』 「열전」에 간략하게 나오는데, 그나마 『당서』의 악평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이는 대개 연개소문을 폄하하고 사적까지 왜곡한 중국 사서의 영향 탓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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